열여덟 나이에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됐다. 복식호흡을 하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은 멜로디가 실렸다. 큰스님이 참선수행을 하던 그의 어깨를 죽비로 치자 입에서 염불 대신 가수 한영애의 ‘누구 없소’가 튀어나왔다. 2년 만에 하산했다. 여성 로커로서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르다가 어느 날 빌리 홀리데이의 음반을 듣고 재즈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올해 데뷔 12년을 맞는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의 이야기다. 돌이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재즈를 하기 위해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 같다는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웅산은 비구니 시절 그의 법명이다.

그는 지난해 3집 앨범 ‘예스터데이’를 내면서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SBS 드라마 ‘일지매’ 등 여러 드라마의 삽입곡을 불렀고 케이블채널 tvN의 시사프로그램 ‘리얼스토리 묘’의 진행자로서도 활동하는 등 재즈 가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올 초 그의 단독공연 역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러한 ‘웅산 효과’는 국내 재즈 신(무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재즈가 난해하거나 어렵거나 시끄럽다는 편견이 많은 상태에서 재즈를 접하니까 거부반응이 있었던 듯해요. 저는 늘 공연할 때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웅산 덕분에 재즈가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웅산은 최근 직접 프로듀싱한 4집 앨범 ‘폴 인 러브’를 발표하면서 ‘코지(편안한) 재즈’를 내세웠다. 속삭이는 듯한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연주가 가을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록그룹 퀸의 ‘크레이지 리틀 싱 콜드 러브’ 등 팝 명곡과 가요, 스탠더드 재즈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했다.

그는 “2, 3집은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웅산이 표현하는 재즈나 블루스였다면 이번 앨범은 ‘이게 재즈’라고 알려주는 재즈의 지침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웅산은 일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1998년 당시 우리나라에 비해 재즈가 훨씬 대중적이었던 일본에 건너가 재즈가수로 활동하며 일본의 유명 라이브홀 블루노트에서 시골 마을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500회가 넘는 공연을 펼쳤다. 덕분에 10년 가까이 호흡해온 국내 밴드와 일본 밴드를 따로 두고 있다.

“공연장도 없는 일본 시골의 한 마을 촌장댁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어요. 언어는 다르지만 음악은 낯선 사람을 이어주고 공간을 만들어주는 큰 힘을 갖고 있고, 특히 재즈는 즉흥적인 요소가 많아 관객과 하나가 되는 건 시간문제예요.”

웅산은 오는 19∼21일 서울 문화일보홀에서 4집 발매 기념 ‘어텀 인 재즈’ 콘서트를 연다. 최근 국내 여가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음반사인 일본 포니캐니언과 전속계약을 맺은 그는 이제 아시아 무대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을 묻자 웅산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인용했다.

“곡을 쓰거나 노래할 때 늘 변함없는 생각은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따뜻함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죠. 제 음악으로 그런 따뜻함이 전해졌으면 하는 욕심이에요. (록의) 강함이건 (재즈의) 포근함이건 따뜻함이 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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