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블' |
'영원한 제국이 존재할 수 없듯이 영원한 기업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
'현실의 거울' 구실을 하는 영화들도 이러한 진리를 묵묵히 전해오고 있다. 특히 미국 월가와 금융가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은 자본주의가 그토록 신봉하는 금융시스템의 허점과 그로 인한 금융위기를 경고하고 진단한다.
영화 속에서 금융가들은 탐욕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는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을 찾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 탐욕이 부른 몰락 그린 금융영화
= 금융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회자되는 영화가 있다. 지난 2000년 국내 개봉된 '겜블(Rogue Trader)'은 세계적 투자은행이 한 개인의 탐욕에 의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겜블'은 1995년 당시 20대의 청년 닉 리슨이 자신의 손실을 속이는 불법 행위를 통해 200년 전통의 영국 은행 베링스를 파산시킨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보일러룸' |
이 영화 줄거리는 역사가 깊은 투자은행의 몰락이라는 점, 회사가 자신의 손실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 등에서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닮은꼴이다.
영화 '월스트리트'(1987년)도 탐욕스런 증권브로커가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지 보여준다. 주인공 버드는 월가에서 악명높은 금융가 고든 게코와 손잡고 적대적 M&A를 통해 큰돈을 번다. 100만달러의 펜트하우스와 미녀와의 연애도 잠시일 뿐. 내부 정보를 통한 주가조작 등 각종 불법행위들은 버드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결국 주식거래법 위반으로 체포된다. 교도소로 들어가는 버드에게 그의 아버지는 "땀 흘려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 옳다"는 말로 영화의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 현실의 독과 약이 되는 영화들
= 금융영화는 거꾸로 현실의 참고서가 되기도 한다. 김경준 전 BBK 대표는 금융영화를 악용한 대표적 사례다. '보일러룸'은 유령회사를 차려 주가조작을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기는 불법 증권브로커를 지칭하는 속어다. 동명의 영화는 지난 2000년 국내에 개봉된 바 있다. 김씨는 이 영화를 주가조작의 교범으로 삼아 사회에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다. 영화는 실적도 없는 유령회사 주식을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권유하는 '봉이 김선달'식의 주가 사기를 다루고 있다.
경제난에 허덕이던 미국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행복을 찾아서'(2007)는 고달픈 현실에 빛줄기가 돼주는 작품이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입사한 크리스 가드너의 성공 실화를 다뤘다. 아들과 함께 노숙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한 끝에 억만장자가 된다는 스토리다. 영화는 장밋빛으로 결론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드너에게 꿈을 준 베어스턴스도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최근 몰락하고 만 것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개인의 성공과 몰락을 그리기 딱 좋은 주제가 금융가 이야기"라면서 "이들 금융영화는 증권가가 얼마나 냉혈한 정글인지 보여주면서 결국엔 거대 금융시스템 속에 한 개인이 롱런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