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비주얼…누가 있나=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헬보이다. 25일 개봉하는 ‘헬보이2: 골든 아미’의 주인공이자 못생기고 터프한 슈퍼히어로의 대명사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지옥에서 태어난 악마의 자식이지만 스스로 머리의 뿔을 자르고 어둠의 세력에 맞서는 영웅이 된다.
만화 헬보이에 생기를 불어넣은 사람은 바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다. 1,2편 모두 연출한 델 토로는 판타지와 괴물 영화의 대가. 이미 ‘판의 미로’에서 그로테스크한 미술과 뒤틀린 고딕 이미지를 선보인 적이 있다. 그의 손을 거친 헬보이는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 역사상 가장 기괴한 모습으로 탄생했다. 그럼에도 외모에 비해 귀엽고 덩치에 비해 날렵하다.
‘인크레더블 헐크’의 헐크 역시 만만찮은 외모의 소유자. 브루스 배너 박사는 실험 중 감마선에 노출돼 돌연변이 녹색 괴물로 변신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현대적 변주인 만큼 헐크는 하이드씨 못지않게 혐오스럽다. 그가 악당을 때려 눕혀도 마냥 신나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분노를 조절할 수 없어 변태를 겪는 육체와 존재의 이중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묘한 동정심을 유발한다.
지난해 개봉했던 ‘고스트 라이더’는 대놓고 공포감을 준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해골은 영락없이 지옥의 악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물이다. 그런데 이 화상이 정의의 사도라니. 이쯤되면 슈퍼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아직 국내에선 낯선지만 미국에선 남 부럽지 않은 영웅 대접을 받는다. 원작 만화가 무려 4500만부 이상 팔렸다. 이 역을 놓고 니콜라스 케이지와 톰 크루즈 조니 뎁 등이 경합을 벌였을 정도로 인기있는 캐릭터다.
‘판타스틱4’의 암석인간 벤 그림도 딱하긴 마찬가지. 초능력을 갖게 된 판타스틱 동료들 중 유일하게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비운의 영웅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한 나머지 중절모를 눌러쓰고 방황하기도 한다.
◆알고보니 모두 마블 소속이네=마블과 DC코믹스는 미국의 양대 만화잡지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의 고향은 대개 둘 중 하나다. DC 캐릭터는 전형적이며 고전적인 영웅들이 주류인 반면 마블 소속은 정체성을 고민하거나 어두운 과거사를 지닌 고독한 존재가 많다. DC가 바른생활 사나이 군단이라면 마블은 삐딱한 반영웅 집단인 셈. 지금은 이런 이분법이 모호해졌지만 여전히 경향성은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슈퍼히어로들이 모두 마블 소속인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순탄치 않은 개인사를 지녔다. 헬보이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 번민을 멈추지 않고 헐크는 이중적 자아를 고민한다. 고스트 라이더나 벤 그림은 말할 것도 없다.
외모가 볼품없는 이들이 미국에선 흥행에 성공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외모 지상주의가 팽배한 사회상이 반영됐는지 모른다. 이들 중 관객 100만명을 넘은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지난 6월 개봉한 ‘인크레더블 헐크’가 99만명으로 최고 기록이다. 2005년과 지난해 개봉한 ‘판타스틱 4’ 1,2편이 각각 76만과 58만명으로 뒤를 이었다.
북미에서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고스트 라이더’는 불과 36만명을 모으는데 그쳤으며 2004년작 ‘헬보이’도 20만명에 턱걸이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서는 참담한 수준이다. 같은 마블 출신임에도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엑스맨’ 시리즈 등 외모가 샤방샤방한 히어로들은 흥행 대박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