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갱년기 극복법

 
『아내는 늘 옆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대한변호사협회 초청으로 변호사들에게 「口述辯論(구술변론) 테크닉」이란 주제로 강의했다. 법정에서 배심원들과 판사를 論理的(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기법 강의였다. 강의 내용은 상대의 성향이나 특성에 맞는 대화법이라든지 남녀 간의 대화방식의 차이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라 하면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고 상대의 마음을 잘 읽을 것 같지만, 변호사들도 나름대로 커뮤니케이션에 고민이 많다. 특히 일에서는 빈틈 없는 프로인데, 정작 가정에서는 아마추어인 사람이 많았다.

강의가 끝나고 한 변호사가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오늘 강의를 듣고 정말 후회가 됩니다. 저는 20년 넘게 변호사를 하면서 늘 의뢰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제 아내의 마음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 저는 기본적인 성향이 너무 달랐기에 그냥 저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노력하기보다는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꼼꼼하고 논리적인 반면, 제 아내는 털털하고 감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짜증을 많이 냈고 답답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강의를 들으며 「일을 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은 그렇게 이해하며 맞추려고 많이 노력했으면서 정작 인생의 伴侶者(반려자)인 아내 마음은 왜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까?」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아내의 존재가 지극히 당연한 日常(일상)이었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그냥 늘 제 옆에 있는 사람인 줄만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유방암 선고를 받고 그렇게 떠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 주는 건데…』
  
  
남성도 갱년기 겪는다
  
잔뜩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잇고 있는 그를 보며 안타까웠다. 
  
실제 강의를 듣는 참석자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 남성들이 많다. 병원장, 변호사, 국회의원, 대학교수, 대기업 임원 등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데도 정작 『요즘 잘 지내세요?』 라고 인사를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아니. 잘 못 지내고 있어요. 사는 게 재미 없고 기분이 우울하네』, 『요즘 들어 부쩍 외롭고 쓸쓸하네요. 갱년기가 왔는지 자꾸 기분이 가라앉네』 하는 식이다.
  
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갖춘 이들이 중년이 되면서 그렇게 우울해하고 삶의 즐거움을 못 느끼는 걸까? 
  
처음에는 으레 갱년기 증상이려니 생각하고 웃으면서 넘겼다. 그러나 강의를 하며 많은 중년 남성들을 만나 보니 그게 단순히 갱년기 증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의학적으로만 따져 보면 40세 이상의 중년 남성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서서히 감소해 性慾(성욕)·체력 저하, 근육량·골밀도 감소, 불안·우울 등의 갱년기 증상을 겪게 된다고 한다. 
  
또 여성 갱년기에 비해 국내에서는 남성 갱년기가 아직 생소해(외국에서는 이미 대표적인 남성 질환으로 인식되어 적극적인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함) 적극적인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위에 나열한 갱년기 증상이 너무 심하다면 의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일반적인 갱년기 증상들은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약화시키거나 피할 수 있다. 특히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내와의 관계를 결혼 전 연애시절로 되돌려보라는 것이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듯 오랫동안 잊고 살던 과거의 추억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마음과 생각을 그때 그 시절로 되돌려본다면 갱년기로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을 효과적으로 방지해 준다. 
  
  
즐거웠던 과거를 회상하라
  
얼마 전 「최근 들어 부쩍 외롭고 사는 게 재미가 없다」며 某(모)기업체 사장이 상담하러 왔다. 그가 정신과나 심리 상담소가 아닌 커뮤니케이션 연구소를 찾은 이유는, 갱년기 증상으로 나타나는 여러 신체적 변화와 우울한 감정들 때문에 누가 말을 걸어와도 대답하기 귀찮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경청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사소한 일로 자주 짜증을 내게 되고 업무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해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있기에 조직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배우려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기본 문제는 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 기법 때문이 아니라 갱년기 증상으로 인한 우울한 감정이었다. 나는 커뮤니케이션 교육보다 『결혼 전 아내와의 데이트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 했던 일들을 하나둘 적극적으로 다시 경험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평소 아내와 사이가 비교적 좋은 편이었기에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28년 전 신혼여행을 갔던 제주도, 함께 다녔던 대학 캠퍼스, 신혼 초기에 살았던 전셋집 등 여러 장소들을 찾으며 오랫동안 잊고 살던 그때 그 시절을 回想(회상)했다. 
  
그런 곳을 찾으며 두 사람은 脫毛(탈모)와 건강을 걱정하며 한숨 짓기보다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허허. 그때는 서로 연락을 취할 휴대전화가 없었죠. 그래서 일단 약속 장소에 나가면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무작정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더군다나 제 아내는 늘 데이트 약속에 30분씩 늦었답니다.
  
저도 깜빡깜빡하는 버릇이 있어 약속 장소를 곧잘 혼동했죠. 덕수궁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아내가 너무 오지 않아 「혹시 내가 약속 장소를 잘못 알았나?」하며 경복궁으로 발길을 돌리려 하면 저만치서 아내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래도 그때는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결국 이러한 노력으로 두 사람 모두 갱년기 증상을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었다.

 
파랑새는 가까운 곳에 있다
  
사는 게 재미 없고 기분이 우울하고 외로운 갱년기 증상이 있다면, 혹시 아내에게 이러한 증상이 있다면 부부가 함께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결혼 전 아내와의 연애시절을 떠올리며 그때 그 시절로 생각과 마음, 대화 내용을 되돌리는 것이야말로 모두에게 젊은 에너지를 넣어 줄 수 있다. 부부가 함께했던 그 시절 추억 속 그리운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 모습을 떠올린다면 너무 익숙해 이제는 여자로 보이지 않던 내 옆의 아내 또한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멋진 여자로 다시 보일지 모른다. 
  
혹시 아내와의 추억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빛바랜 과거 앨범을 찾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추억 속에 잠겨보는 것도 좋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아내와의 데이트 장소들을 함께 찾아가보거나 그때 보고 들었던 영화와 음악들을 찾아서 함께 보고 듣자. 
  
물론 추억의 장소는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때 울고 웃었던 영화나 음악들 역시 그때의 감흥은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소나 사물에서 느끼는 느낌은 예전과 많이 다를지라도 그것을 함께했던 사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아내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 또한 되찾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것은 남편의 갱년기 탈출을 넘어 아내의 갱년기 탈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옛말에 回頭靑山(회두청산)이란 말이 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평생 그토록 찾아다니던 푸른 산이 거기에 있었다」는 의미다. 세상의 진리나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열심히 찾아 헤매다가 나이가 들어 지친 육신을 추스르며 마음을 바꿔 세상을 바라보니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인데,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파랑새」 이야기가 있다. 그토록 헤매며 찾아다니던 꿈의 파랑새가 결국 내 집에 있다는 것이다.
  
환경이나 장소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옆에 있는 아내가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꿈의 파랑새는 아니었던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라
  
얼마 전 우연히 봤던 「우리는 평생 자가용 없이 손잡고 걸으며 산다」는 조금은 특이한 제목의 피아니스트 백건우, 영화배우 윤정희씨 부부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기자가 그들 부부에게 『아직도 자가용을 사지 않고 사는가?』라고 묻자 그 부부의 대답은 이러했다. 
  
『네. 우리는 손잡고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서든 걷습니다. 모스크바든 뉴욕이든 걸어가면서 구경하고 이야기하며 삽니다. 거리는 우리가 사는 또 하나의 즐겁고 행복한 공간이며 우리의 많은 시간과 삶이 세계 도처의 거리에서 만들어졌으니까요』
  
대부분의 국민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지금, 부부가 휴대전화 하나를 의좋게 함께 사용하고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함께 오순도순 염색하며(윤정희씨는 남편 흰머리를 염색해 주고 남은 염색약으로 자신의 머리를 염색한단다) 함께 늙어 가는 것이 진정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나 영화배우 윤정희씨나 모두 자신의 일에서 인정받는 프로답게 부부 관계에서도 역시 프로였던 것이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임을 인정해 주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사는 모습이야말로 中年(중년) 부부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예순이 넘은 나이에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럽기도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여행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물론 이들 부부도 싸울 때가 있다고 한다.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왜 싸울 일이 없겠는가. 그러나 이들 부부에게 소소한 싸움은 그저 일상에서 스치는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인생의 오아시스」
  
나는 늘 강의에 앞서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40~50代 중년 여성들로 이루어진 대한여의사협회 임원진들에게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했을 때다. 그 강의에서 역시 나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힘들 때 힘이 되는 인생의 오아시스는 무엇입니까?』
  
의외로 「인생의 오아시스」에 대해 대다수 분들이 잘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글쎄요. 오아시스라…. 저는 그냥 사는 자체가 즐거움이에요』라며 대충 얼버무리는 분부터 『우리 딸이죠. 내가 우리 딸 때문에 살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그중에는 확고한 「인생의 오아시스」가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분은 유난히 표정이 밝고 외모가 젊은 것이 특징이다.
  
『네. 저는 「인생의 오아시스」가 남편과 떠나는 여행입니다. 일 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 휴가 때 남편과 보름 동안 각자 하는 일을 접고 여행을 떠나요. 그것이 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진정한 오아시스죠. 여행을 가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하면서 새삼 남편의 소중함을 느끼고, 새로운 에너지를 가득 충전하고 돌아와 병원 진료실에 앉으면 환자들에게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 말을 듣고 「아, 저 분은 행복한 분이다. 그리고 저 분이 계신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참 행복한 환자들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보다 좀더 젊어지고 싶다면, 아니 조금 천천히 나이가 들고 싶다면 부부가 함께 「인생의 오아시스」를 적극적으로 찾아보자. 
  
그것이 여행이든 운동이든 과거 추억이어도 좋다. 어떤 것이든 부부가 함께 즐기며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젊은 시절의 감정과 열정을 다시금 느껴보는 것이다. 
  
내 아내가 중년 아줌마에서 사랑스러운 여자로 보이는 바로 그 순간 중년 남성들에게 무섭게 찾아오는 갱년기 증상 또한 사라진다. 아내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만 중년의 갱년기 증상을 떨쳐버리고 젊음을 유지하며 멋지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혜범
1979년 서울 출생. 이화女大 언론홍보영상학부 졸업. 연세大 언론홍보대학원 커뮤니케이션 전공. 한국 스피치 커뮤니케이션학회 정회원. 1994~2004년 프리랜서 아나운서 활동. 「이혜범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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